정년퇴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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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몸담았던 일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쥐어본 두 손이 낯설게 가벼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매일 아침을 채우던 분주한 발걸음이 멈추고 익숙했던 직함이 사라질 때, 마음 한구석에는 파도처럼 서늘한 상실감이 밀려들곤 합니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의 속도에 맞춰 살아왔습니다. 회사의 시계, 타인의 기대, 그리고 묵직한 책임이라는 무게를 짊어진 채 매일을 견뎌냈습니다. 정년퇴임이 주는 충격은 어쩌면 그동안 내 삶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깨닫는 순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멈춤은 결코 쓸모의 다함이나 초라한 퇴장이 아닙니다.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해서 사용하던 때는 가고, 이제부터는 내가 필요한 것을 찾아 사용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세상의 요구에 나를 맞추며 소모되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내 손으로 시간과 일상을 가꾸어갈 온전한 자유를 얻은 셈입니다.

그동안 타인을 위해 쓰이느라 닳아버린 마음을 다독이며, 이제는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시선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지나치기만 했던 길가의 풀꽃을 오래 들여다보고, 내가 진정으로 머물고 싶었던 풍경 속에 가만히 서보는 일. 세상이 매겨놓은 가치 대신 내 마음이 가리키는 소박한 기쁨들을 하나씩 찾아 나서는 일이면 충분합니다.

퇴임은 마침표가 아니라, 가장 나다운 문장을 써 내려가기 위한 다정한 쉼표입니다. 남겨진 시간은 이제 세상의 도구가 아닌,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깊고 단정하게 살아갈 가장 따뜻한 계절입니다.